2010. 4. 4.

터키 (에페소. 파묵칼레)






















에페소에 도착하니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곳이 성지 순례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대 그리이스의 유적지로서 세계인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 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에베소는 서부 소아시아의 에게 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7-6세기에 건립된 식민도시다. 에페소는 주변 도시 혹은 국가,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 등의 흥망성쇠에 따라 식민지화 되는 역사로 억룩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식민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페소는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기원전 6세기에 건조된 웅대한 아르테미스 신전과 로마 제국시대에 건조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건축 도미티아누스신전 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전 에페소인들에게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받던
대상이어서, 루가에 따르면 사도 바울로가 선교를 할때 은으로 만든 신전모형을 팔던
상인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사도 바울로가 우상을 숭배하지 말자고 설교하여,
사람들이 신전모형을 더이상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페소는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바울로가 전도와 사목을 한 교회중 하나가 에페소 교회였다. 또한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7개의 교회중 하나가 에페소교회일 정도로 1세기
기독교 역사에서 비중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국 성공회의 폭스 신부가 쓴 《순교자》
에 따르면 사도 성 바울로의 제자인 디모테오가 주교로 사목한 교회가 에페소
교회라고 한다.
에페소에는 고대 도시 답게 많은 것 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우리는 화장실 목욕탕
등을 둘러 보고 중앙 광장에 도착하니 퍼포먼스가 있었다
복잡한점도 있었으나 잠깐 한눈 판 사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내 생각에 그 퍼포먼스를 따라간것 같았다
아무리 둘러 봐도 보이지 않는다 큰일 났다 싶어 가이드 에게 얘기한다음
그룹에서 이탈해서 물레를 찾으러 다녔으나 허탕이였다
10여분 정도 찾아 다닌 시간이 몇 년처럼 느껴 졌다
소매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물레가 미아가 된다면 큰일이다 싶어 걱정을 하면서
출구 쪽으로 나오니 차 있는 곳에 그녀가 미리 와 있엇다
화도 나고 반갑기도 하여 인상을 쓰면서 자초 지종을 물어 보았다
근데 퍼포먼스 대열은 죽어도 안따라 갔단다
신만 아는일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에게해의 유명한 휴양도시인 쿠사다시에서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하루밤을 지냈다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 주에 위치한 파묵칼레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유서 깊은 고대도시 유적이 어우러진 곳이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의미로 경사면을 흐르는 온천수가 빚어낸 장관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석회성분을 다량 함유한 이곳의 온천수가 수 세기 동안
바위 위를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어 마치 하얀 목화로 만든 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이 온천수는 섭씨 35도로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치료와 휴식을 위해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로마 시대에는 여러 황제와 고관들이 이곳을 찾았는데 하얀 결정체가 대지의 경사면을 온통 뒤덮은 장관을 감상하면서 심신의 치료를 겸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였기 때문이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번성했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이곳에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은 최대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에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하였으며,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의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배세력의 변천 속에서도 지속적인 번영을 누려왔던 히에라폴리스이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되었다. 대지진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하였고 이후 발굴 및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을 동시에 갖춘 이곳은 1988년 유네스코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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