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1.

프랑스 (남부.몽블랑)




























































애마를 찾으러 프랑스로 유럽은 5월26일부터 8월 17일 멕시코로 갈 때 까지 84일간 있을 예정이었다 비교적 유럽 일정을 길게 잡은 것은 아내를 위함이였다 다음 여행 기회가 있더라도 유럽 까지 오기는 쉽지 않을것 같아 넉넉하게 잡았다 장기간의 유럽 여행은 차로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많은 배낭 여행자들은 기차 여행을 선택하고 있고 또한 유럽에서의 기차 여행은 추억에 남을 만한 매혹적이기도 하다 96년도 삼성에서 근무할 때 부장급 이상자들에게 유럽 배낭 여행 기회가 주어졌을 때 유레일 패스로 여행한적이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자동차로 다니기로 결정했다 자동차로 여행 하기로 결정한 또 다른 이유는 장기간 여행시에는 열차 비용으로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고 이동이 용이하며 숙소 정하기가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흔히 자동차 여행이라 함은 허쯔나 에이비스같은 렌터카를 생각하게 되나 유럽은 리스가 발달되어 있고 그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것이 퓨조리스 시스템 이다 퓨조리스는 퓨조의 신차 자동차를 본인 명의로 받아 계약 기간중에 운행하고 반납 하는 시스템으로 리스 가격에 보험료까지 전부 포함되어 있다 통상 17일 이상 렌터카를 필요로 할때는 이 시스템을 적극 추천 한다 여행 출발전에 한국 대행사인 조인항공을 통해 퓨조 307SW 를 계약했다 바르셀로나 체류기간을 뺀 79일간을 계약하고 17일간 기본요금 980유로 와 1일 18유로 씩 55일간 990유로 총 1970유로를 카드로 지급했다 30일 이상 리스 할 때는 7일간 프로모션의 혜택도 있었다 차량 인수는 거의 유럽 전 지역에서 할 수 있고 프랑스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인수할 경우에는 차량 운반비는 무료였다 유럽이용 항공사가 원월드의 이베리아 항공이였으므로 스페인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의 남부 페르피낭으로 했다 바르셀로나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멕시코로 떠날때 다시 들려야 함으로 여운을 남겨 놓고 페르피낭으로 출발했다 페르피낭으로 가는 기차는 에스따시오 데 프랑스라는 역에서 출발했고 국제선 열차로 4시간 정도 소요 되었고 요금은 48유로였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기차 선로는 서로 달라 국경에서 기차를 갈아 타거나 기차에 앉아 있으면 바퀴를 바꾸어서 운행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페르피낭 공항에 도착하여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시간 맞추아 피켓맨이 내이름을 들고 나타 났다 서로 간단한 인사후 몇장의 서류에 사인을 한다음 차를 인수 했는데 완전 신차다 드렁크에 무거운 배낭을 넣고 나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여행중에는 짐이 얼마나 거추장 스러운지 왠만하면 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지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운전 방법에 대하여 대충 설명을 듣고 내이름으로 된 차량등록증과 사용설명서를 받은 다음 시동을 걸었다 차는 멋있게 나가긴 했으나 뭔가 좀 메끄럽지 못했다 한참뒤 변속기가 수동과 자동 겸용이었다 수동으로 놓고 속드를 올렸으니 메끄럽지 못할 수밖에 자동으로 모드를 바꾸니 멋있게 달려 나간다 우리의 유럽 자동차 여행은 이렇게 시작 했으나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어디로 가야 시내로 갈지 갈팡 질팡이다 준비한 미쉐린 지도를 펼치기 시작했는데 우리들의 고생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우선 기름을 넣으야 했다 인수시 15리터 정도 기름을 주기는 하지만 이미 유류 게이지는 바닥을 가르키고 있엇다 주유소가 보이길래 들어 갔는데 아무도 없는 무인 주유소였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설명이 되어 있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혹시나 카드라도 삼키면 큰일이 아닌가 그래서 기름도 못 넣고 그냥 나와 버렸다

A9 고속도로를 타고 프랑스 남부 해안을 달렸다 차도 있겠다 고속도로로만 달리기에 너무 아까웠다 국도로 내려 왔다 고속도로를 올라 갔다를 몇 번 반복하다 첫 번째 도착한 도시가 님 (NIMES)이라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다 이 도시는 우리에게 사전 지식을 준 게 아무 것도 없는 도시였다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제네바까지 가야 했고 가다가 중간에 들린 도시였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시내로 나오는 길에 본 이 도시는 그냥 시골의 도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으며 섬유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이며 시내 한가운데 중세 유럽의 경기장이 암갈색의 세월을 그대로 담고 있었는데 크게 망가짐이 없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신기한 마음으로 차를 주차한 다음 경기장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축제 중이었다 경기장 안에서는 투우를 하고 있었고 경기장 밖에서는 각종 소 관련 요리 식당들이 간이 식당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우리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투우를 보기로 하고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 갔다오전이어서 그런지 경기장에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으나 투우를 하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볼 줄 알았던 투우를 프랑스에서도투우를 한다는 사실이 신기 하기만 하였다경기를 시작하는 나팔을 불었다힘이 넘쳐 날 뛰는 소 한 마리를 경기장 안으로 넣은 다음 여러 명이 말을 타고 나와 소를 혼란케 하여 힘이 빠지게 하였다소는 말을 좇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다한참을 힘을 빠지게 한 다음 열명 정도가 칼과 창을 가지고 나와소 한 마리를 가지고 요리 조리 약을 올려 가면서 창으로 찔렸다소는 한 사람을 좇아 가다가 그 사람이 대피소로 숨어 버리면다른 사람을 좇아 가다가 창에 찔리고 하였다그러다가 사람이 위험 하다 싶으면 여러 명이 동시에 나와 소를다른 곳으로 유인 하였다소가 완전 지쳤다 싶을 때 다른 사람은 다 퇴장 하고 일대일로마지막을 정리 하는데 한칼에 죽일 수 있는 소를 마지막 까지가지고 논 다음 칼로 급소를 찔러 죽였다
나와 나의 아내는 더 이상 경기를 볼 수 없었다 투우가 이렇게 잔인 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직접 본 우리는 못볼 곳을 본 듯 경기장을 나와 버렸다경기장을 나오니 방금 경기장 안에서 죽은 소가 실려 나오고 밖에서는 잡은 소로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제네바 까지 6월 3일 까지 가야한다 그 곳 친구의 집에서 왕섭이네 가족과 만나기로 했다넉넉하게 시간을 계획 한 터라 지도책을 보니 고흐의 고향 아르와몽펠리에 그리고 마르세이유를 거쳐 리용 다음으로 스위스 국경을 넘는 코스가 좋을 것 같았다
마르세이유는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로마 시대에건설된 지중해 최대의 항구 도시이다또한 마르세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먼저 상공회의소가 13세기에 세워진 상업 중심 도시 이기도 하다우리는 지도를 보고 남쪽 언덕 위에 있는 성당으로 가기로 했다성당은 주택가 골목길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는데 주차장에서내려 계단을 한참 올라간 다음에 있었다계단 옆에는 예수님께서 걸어오신 십자가의 길이 조각되어 있어어렵게 올라가는 계단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었다노틀담 성당 ( Basilique de Notre Dame de la Garde ) 은 13세기에 창건 되었고 중간에 몇 번 개축 되었다고는 하나 600년 이상의세월을 견뎌 온 건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였고화려하였다 정상에는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 있었는데 금빛으로 되어 있었다 정상의 주위는 탁 트여 있어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시내와 바닷가가 한눈에 들어왔다우리가 노틀담 성당을 찾은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시내가 한눈에 들어 왔는데 항구에 요트와 보트가 정박 되어 잇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는 이어 바닷가 쪽으로 옮겨 16세기에 만들었다는 생 장 요새( Fort St. Jean ) 를 보고 해양 박물관에 가서 범선을 본 다음 리용으로 가기 위해 A7 고속 도로를 달렸다
우리가 리용에 도착 하는 날은 프랑스의 프로 축구 경기가 리용에서열리는 날 이였기에 응원단 들로 인하여 숙소 잡기가 매우 어려워시내를 몇 번 돌다가 겨우 잡았다프랑스의 축구 열기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 이기도 하였지만 하루종일 시내가 떠나 가도록 응원하는 열기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리용은 고대로부터 프랑스의 중심 도시로 번영해 왔으며 2000년늬 역사를 가진 구시가지는 지금은 유네스코에서 보호하는 도시이다 리용의 대표적인 성당은 푸르비에르 사원 ( Basilique de N. D. de Fourviere ) 이며 성당이라기 보다 수도원과 같은 분위기이다푸르비에르 언덕 위에 있는 성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구시가지에서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가야 하며 성과 같은 사원 안에는 전시장레스토랑 기념품가게가 잘 정비 되어 있었고 유사시에 1000명이상이 충분히 지낼 수 있는 우물터도 있었다물론 시가지도 한눈에 들어 왔는데 빨간 지붕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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